테라와다 불교 입문 첫째 편

제1부 들어가며

붓다, 담마, 상가

Buddha, Dhamma, Saṅgha

테라와다 불교로 들어가는 문

스리랑카 옛 사원의 계단 앞에 놓인 반달 모양의 문턱돌, 월석(sandakada pahana)을 본뜬 무늬

불교를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뜻밖에도 아주 기초적인 물음들이다. 붓다는 신인가, 사람인가? 불교는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하는가? 수많은 불교 전통 가운데 ‘테라와다’는 어떤 전통이며, 그 가르침은 어디에 기록되어 전해 오는가?

이 편은 이런 물음들에 답하면서 강좌 전체의 토대를 놓는다. 불교 전통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오래전부터 세 가지 보배, 곧 삼보(三寶, tiratana)로 요약해 왔다. 진리를 스스로 깨달은 스승인 붓다(Buddha), 그 스승이 깨닫고 가르친 담마(Dhamma), 그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고 실현하는 이들의 공동체인 상가(Saṅgha)가 그것이다. 이 세 보배와 거기에 ‘귀의한다’는 것의 뜻을 먼저 살핀 뒤, 테라와다라는 전통과 그 경전, 그리고 가르침을 대하는 태도를 차례로 알아보겠다.

Sabbapāpassa akaraṇaṃ, kusalassa upasampadā;
sacittapariyodapanaṃ, etaṃ buddhāna sāsanaṃ.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선한 것을 갖추며,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붓다들의 가르침이다.

『담마빠다』 Dhp 183

예상 학습 시간 약 90분. 본문 아홉 절, 이해도 점검 다섯 문제, 용어 카드 서른두 장.

붓다는 누구인가

빠알리어 buddha는 ‘깨어나다’, ‘알다’라는 뜻의 어근 budh에서 나온 말로, ‘깨어난 이’, ‘안 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부처’는 이 말의 한자 음역인 불타(佛陀)에서 왔다. 그러므로 붓다는 본래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누구의 가르침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이를 가리키는 칭호다. 경전은 우리 시대 이전에도 붓다들이 출현했다고 설하며, 우리가 오늘날 붓다라고 부르는 분은 지금의 시대에 출현하여 가르침을 편 분이다.

이분은 기원전 5세기 무렵 북인도 갠지스 강 유역에서 활동한 역사적 인물이다.1 경전에서는 흔히 씨족의 이름을 따서 ‘고따마’(Gotama)라고 불리고, 사꺄(Sakya)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에서 ‘사꺄무니’(석가모니)라고도 불린다. 제자들은 그를 ‘세존’(Bhagavā)이라 불렀고, 붓다 자신은 스스로를 ‘여래’(如來, Tathāgata)라고 즐겨 불렀다.

경전이 전하는 생애의 뼈대

경전은 붓다의 생애를 한 편의 전기로 정리해 두지는 않았지만, 붓다 자신의 회고와 여러 사건의 기록이 여러 경에 흩어져 있다. 「대전기경」(DN 14)에 따르면 아버지는 숫도다나 왕, 어머니는 마야 왕비였고 도성은 까삘라왓투였으며, 『숫따니빠따』(Sn 3.11)는 보살이 룸비니에서 태어났다고 노래한다. ‘보살’(bodhisatta)이란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붓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보살은 풍족하게 자랐으나, 자신도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인 존재이면서 늙고 병들고 죽는 남을 혐오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성찰하자 젊음과 건강과 삶에 대한 도취가 사라졌다고 회고한다(AN 3.39). 「성스러운 구함 경」(MN 26)은 이 동기를 더 분명히 한다.

성스럽지 못한 구함 anariyā pariyesanā

자신이 태어나고 늙고 죽기 마련이면서, 역시 태어나고 늙고 죽기 마련인 것들, 곧 가족과 재산 따위를 구하는 것.

성스러운 구함 ariyā pariyesanā

그런 것들에서 위험을 보고, 태어남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위없는 안온, 곧 열반을 구하는 것. 보살은 이 구함을 위해 집을 떠났다.

So kho ahaṃ, bhikkhave, aparena samayena daharova samāno susukāḷakeso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o paṭhamena vayasā akāmakānaṃ mātāpitūnaṃ assumukhānaṃ rudantān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머리칼이 새까만 젊은이로서 축복받은 젊음을 갖춘 인생의 첫 시기에, 원치 않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눈물 젖은 얼굴로 울고 계시는데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걸치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하였다.

「성스러운 구함 경」, MN 26

스물아홉에 출가한 보살은(DN 16)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라는 두 스승 밑에서 매우 깊은 명상의 경지, 곧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경지들이 “염오로도, 소멸로도, 열반으로도 이끌지 않고 단지 그 경지에 해당하는 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임을 알고 두 스승을 떠났다(MN 26). 아무리 미묘한 경지라도 조건 지어진 것인 한 괴로움의 끝이 될 수 없다는 통찰이 이미 여기에 드러나 있다.

그 뒤 보살은 몸이 뼈와 가죽만 남을 만큼 극단적인 고행에 몸을 던졌으나, 그것으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때 어린 시절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 감각적 욕망을 떠나 첫 번째 선정에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바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 다시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MN 36). 쾌락에 빠지는 것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아닌 이 길이 첫 설법에서 선언될 ‘중도’(majjhimā paṭipadā)의 원형이다.

보살은 우루웰라의 강가 숲에 자리 잡고 네 가지 선정을 차례로 성취한 뒤, 고요하고 청정해진 마음으로 밤의 세 시간에 걸쳐 세 가지 밝은 지혜, 곧 삼명(三明)을 얻었다(MN 36). 그 마지막에서 그는 괴로움과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알았다. 전통적으로 이때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밤의 첫째 시간pubbenivāsānussatiñāṇa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
밤의 둘째 시간cutūpapātañāṇa중생들이 업에 따라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는 지혜
밤의 마지막 시간āsavakkhayañāṇa번뇌(āsava)를 완전히 부수는 지혜, 곧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앎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ti.

그리고 나에게 앎과 봄이 일어났다. ‘나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성스러운 구함 경」, MN 26

깨달음을 이룬 직후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법이 너무 깊고 미묘하여 집착을 즐기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여겨 가르치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 연못의 연꽃 가운데 물 위로 솟은 것도 있듯이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도 있음을 보고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한다(MN 26). 붓다는 바라나시 근교 이시빠따나의 사슴 동산에서 고행을 함께했던 다섯 수행자에게 첫 설법을 했다. 「초전법륜경」(SN 56.11)이라 불리는 이 설법에서 붓다는 두 극단을 떠난 중도가 곧 팔정도임을 밝히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선언했다. 설법이 끝나자 다섯 가운데 꼰단냐에게 처음으로 ‘법의 눈’이 열렸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 –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이 설명이 설해지고 있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났다. ‘일어나기 마련인 것은 무엇이든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

「초전법륜경」, SN 56.11

주석서에 따르면 ‘법의 눈’(dhammacakkhu)은 흐름에 든 이, 곧 수다원의 도(道)를 가리킨다. 이로써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처음으로 성자의 흐름에 든 제자가 탄생했고, 곧이어 최초의 상가가 이루어졌다. 그 뒤 붓다는 마흔다섯 해 동안 북인도 곳곳을 걸어 다니며 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폈다.

「대반열반경」(DN 16)은 마지막 여정을 자세히 기록한다. 여든 살의 붓다는 병든 몸을 이끌고 여정을 이어 가다가 꾸시나라의 두 살라 나무 사이에서 반열반(parinibbāna), 곧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입멸 직전 붓다는 자신이 떠난 뒤에는 자신이 가르치고 제정한 법과 율이 제자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당부하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

자, 이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당부한다.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목표를] 성취하라.

「대반열반경」, DN 16

그림 1-1경전으로 짚어 보는 붓다의 생애

  1. 탄생룸비니에서 태어남아버지 숫도다나 왕, 어머니 마야 왕비, 도성 까삘라왓투 (DN 14, Sn 3.11)
  2. 청년기늙음·병·죽음에 대한 성찰젊음과 건강과 삶에 대한 도취가 사라짐 (AN 3.39)
  3. 29세출가성스러운 구함을 위해 집 없는 삶으로 (MN 26, DN 16)
  4. 수행기두 스승과 고행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에 이르나 떠남, 극단적 고행 뒤 첫 선정의 기억에서 중도를 찾음 (MN 26, MN 36)
  5. 35세우루웰라에서 깨달음네 선정과 삼명,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앎 (MN 36)
  6. 첫 설법이시빠따나 사슴 동산다섯 수행자에게 「초전법륜경」, 꼰단냐에게 법의 눈 (SN 56.11)
  7. 45년북인도 곳곳의 전법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폄
  8. 80세꾸시나라에서 반열반법과 율이 스승이 되리라는 당부와 마지막 말 (DN 16)

붓다는 어떤 존재인가

붓다는 신인가, 인간인가? 「도나 경」(AN 4.36)에서 도나 브라만은 나무 아래 앉은 붓다에게 당신은 신이냐, 간답바냐, 약카냐, 인간이냐고 차례로 묻는다. 붓다는 그 모든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한다. 신이나 인간 따위로 다시 태어나게 할 번뇌를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Seyyathāpi, brāhmaṇa, uppalaṃ vā padumaṃ vā puṇḍarīkaṃ vā udake jātaṃ udake saṃvaḍḍhaṃ udakā accuggamma ṭhāti anupalittaṃ udakena, evamevaṃ kho ahaṃ, brāhmaṇa, loke jāto loke saṃvaḍḍho lokaṃ abhibhuyya viharāmi anupalitto lokena. Buddhoti maṃ, brāhmaṇa, dhārehi.

브라만이여, 마치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물에서 생겨나고 물에서 자랐지만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처럼, 브라만이여, 나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세상에서 자랐지만 세상을 극복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고 머문다. 브라만이여, 나를 붓다라고 기억하라.

「도나 경」, AN 4.36

테라와다 전통에서 붓다는 세상을 창조한 신도, 은총으로 구원해 주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세상을 넘어선 분이며, 그 길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는 스승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그 가르침을 따라 깨달은 제자들, 곧 아라한과 무엇이 다른가? 번뇌를 완전히 끊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차이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처음 연 이’인가, 그 길을 ‘따라간 이’인가에 있다(SN 22.58).

붓다 sammāsambuddha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처음 연 이. 일어나지 않았던 길을 일으키고, 설해지지 않았던 길을 설한 분이며, 길을 알고 길에 능숙한 분.

아라한인 제자 arahant

그 길을 따라간 이. 번뇌를 완전히 끊었다는 점에서는 붓다와 같으나, 앞서 열린 길을 뒤따라 걸어 나중에 그것을 갖추게 되었다.

『담마빠다』는 이 관계를 간명하게 말한다.

Tumhehi kiccaṃ ātappaṃ, akkhātāro tathāgatā;
paṭipannā pamokkhanti, jhāyino mārabandhanā.

노력은 그대들이 해야 한다. 여래들은 [길을] 알려 줄 뿐이다.
그 길을 걸어 선정을 닦는 이들은 마라의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Dhp 276

다만 붓다가 신이 아니라는 말이 그를 ‘조금 지혜로운 옛 철학자’로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경전은 붓다가 보통 사람을 훨씬 넘어서는 지혜와 자비와 신통을 갖추었다고 설하며, 테라와다 전통에서 붓다에 대한 공경은 수행의 중요한 일부다. 그 공경은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길을 먼저 걸어 보이신 스승의 덕을 기억하고 따르겠다는 다짐으로 표현된다.

  1. 테라와다 국가에서 쓰는 불기(佛紀)는 붓다의 반열반을 기원전 544년(또는 543년)으로 보는 전통적 계산을 따르며, 현대 학계에서는 기원전 480년 무렵부터 400년 무렵에 이르는 여러 추정이 제시되어 있다.

붓다의 아홉 가지 덕

테라와다 불자들은 붓다를 떠올릴 때 외모나 전설보다 그분이 갖춘 덕(guṇa)을 떠올린다. 「깃발 경」(SN 11.3)을 비롯한 많은 경에 나오는 다음 정형구가 그 덕을 요약한 것으로, 오늘날 테라와다 사원에서 날마다 독송된다.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이러한 이유로 그분 세존은 아라한이시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이시며, 밝은 지혜와 실천을 갖춘 분이시며, 잘 가신 분이시며, 세상을 아는 분이시며, 위없는 분이시며, 사람들을 길들이는 조련사이시며,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이시며, 깨달은 분이시며, 세존이시다.

「깃발 경」, SN 11.3 등

『청정도론』 제7장은 붓다를 기억하는 수행(buddhānussati)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덕을 자세히 풀이한다. 전통적으로 ‘위없는 분’과 ‘사람들을 길들이는 조련사’를 하나로 묶어 아홉 가지 덕으로 헤아린다. 아래 염송문의 낱말을 하나씩 눌러 보면 그 덕의 풀이가 나타나고 표의 해당 줄이 밝아진다.

낱말을 눌러 그 덕의 뜻을 새겨 보자.

Itipi so bhagavā
아직 고른 낱말이 없다. 첫 낱말 arahaṃ부터 차례로 눌러 보아도 좋다.
표 1-1붓다의 아홉 가지 덕 (『청정도론』 제7장의 풀이에 따름)
원어와 한역뜻풀이
arahaṃ아라한 (應供)번뇌로부터 멀리 떠나 있고, 번뇌라는 적을 무찔렀으며, 윤회라는 바퀴의 바큇살을 부수었고, 신과 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며,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악을 행하지 않는 분.
sammāsambuddho정등각자 (正等覺者)알아야 할 모든 법을 스승 없이 스스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
vijjācaraṇasampanno명행족 (明行足)밝은 지혜(세 가지 또는 여덟 가지 명지)와 실천(계, 감각기능의 단속 등 열다섯 가지 덕행)을 함께 갖춘 분.
sugato선서 (善逝)바른 길로 가셨고, 훌륭한 곳(열반)에 이르셨으며, 버린 번뇌로 되돌아오지 않고, 알맞은 때에 알맞은 말을 하시는 분.
lokavidū세간해 (世間解)형성된 것들의 세상, 중생의 세상, 공간의 세상을 모든 면에서 아는 분.
anuttaro purisadammasārathi무상사 조어장부 (無上士 調御丈夫)계·삼매·지혜·해탈의 덕에서 견줄 이가 없으며, 조련사가 말을 길들이듯 길들여야 할 이들을 갖가지 방편으로 길들이는 분.
satthā devamanussānaṃ천인사 (天人師)대상(隊商)의 인도자가 무리를 이끌어 사막을 건너게 하듯, 신과 인간들을 이끌어 태어남의 사막을 건너게 하는 스승.
buddho불 (佛)네 가지 진리를 스스로 깨달았고, 다른 중생들도 깨닫게 하는 분.
bhagavā세존 (世尊)뛰어난 복덕을 갖추어 존귀하며, 탐욕·성냄·어리석음을 부수신 분.

이 덕들을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다. 「깃발 경」에서 붓다는 비구들에게, 홀로 수행하다가 두려움이 일어나거든 여래의 덕을 기억하라고,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설한다. 붓다의 덕을 기억하면 마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휩쓸리지 않고 곧고 밝아지기 때문이다. 『청정도론』은 이 수행을 닦는 이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깊어지고, 부끄러운 일을 하려 할 때 마치 스승이 눈앞에 계신 듯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깃발 경의 비유

신들과 아수라들이 전쟁을 벌일 때 신들의 왕 삭까는 신들에게, 싸움터에서 두려움이 일어나거든 자신의 깃발 끝을 바라보라고 일렀다. 붓다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 뒤, 그러나 신들의 왕 자신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했으니 그 깃발은 두려움을 없애 줄 수도 없애 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대신 비구들이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집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는 붓다를, 담마를, 상가를 기억하라고 권한다. 삼보를 기억하는 것이 참된 깃발이라는 것이다.

담마, 붓다가 가르친 것

담마(dhamma)는 불교에서 가장 자주 쓰이면서도 뜻이 가장 넓은 말이다. 주석서들은 이 말이 가르침, 원인, 덕, 그리고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등 여러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한다. 뒤에 오온이나 12처를 공부하며 만날 ‘법’은 마지막 뜻이고, 이 절에서 말하는 담마는 붓다가 깨닫고 가르친 진리와 그 가르침이다. 한역 경전은 이를 ‘법’(法)으로 옮겼다.

한 줌의 싱사빠 잎

붓다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싱사빠 경」(SN 56.31)에서 붓다는 싱사빠 잎을 한 줌 손에 쥐고, 내 손에 있는 잎과 이 숲의 잎 가운데 어느 쪽이 많으냐고 비구들에게 묻는다. 비구들이 숲의 잎이 훨씬 많다고 답하자 붓다는, 자신이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나 설하지 않은 것이 그처럼 훨씬 많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이익을 주지 못하고 염오와 소멸과 열반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1-2손 안의 잎과 숲의 잎

손 안의 잎 설하신 것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숲의 잎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나 설하지 않은 것 이익이 없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으므로

Kiñca taṃ, bhikkhave, mayā akkhātaṃ? ‘Idaṃ dukkhan’ti, bhikkhave,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samudayo’ti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nirodho’ti mayā akkhāta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mayā akkhāt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하였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하였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하였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하였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하였다.

「싱사빠 경」, SN 56.31

붓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 주려 한 백과사전적 교사가 아니었다. 그가 가르친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실제로 필요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였다. 「뱀의 비유 경」(MN 22)에서도 붓다는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가르칠 뿐이다”(dukkhañceva paññapemi dukkhassa ca nirodhaṃ)라고 말한다.

독화살의 비유 (MN 63)

세상이 영원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따위의 물음에 붓다가 답하지 않은 것도 같은 까닭이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활을 쏜 자가 어느 계급이며 이름이 무엇이고 키가 큰지 작은지를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고집한다면 그는 답을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담마는 호기심을 채우는 지식이 아니라 괴로움이라는 화살을 뽑기 위한 치료법이다.

계·삼매·지혜의 세 가지 공부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을 실천의 측면에서 요약하면 계(sīla)·삼매(samādhi)·지혜(paññā)의 세 가지 공부, 곧 삼학(三學)이 된다. 이 편 첫머리의 게송에서 “모든 악을 행하지 않음”은 계에, “선한 것을 갖춤”은 삼매에,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함”은 지혜에 대응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붓다는 생애의 마지막 여정에서도 머무는 곳마다 이 세 가지를 거듭 설했다.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이러한 것이 계이고, 이러한 것이 삼매이며, 이러한 것이 지혜이다. 계로 충분히 닦인 삼매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삼매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번뇌들로부터 바르게 해탈한다.

「대반열반경」, DN 16

세 가지 공부는 따로 떨어진 과목이 아니라 서로를 받쳐 주는 하나의 과정이다. 계를 지켜 행위가 깨끗해지면 뉘우침이 없어 마음이 쉽게 고요해지고, 고요해진 마음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그 지혜가 마음을 번뇌에서 풀어 준다. 팔정도의 여덟 요소도 이 세 가지로 묶인다.

그림 1-3세 가지 공부와 붓다들의 가르침 (Dhp 183), 팔정도의 배속 (MN 44)

계sīla“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삼매samādhi“선한 것을 갖추며”
지혜paññā“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
바른 정진·바른 마음챙김·바른 삼매
바른 견해·바른 사유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 번뇌들로부터 바르게 해탈한다

담마의 여섯 가지 덕

붓다의 덕을 기리는 정형구 바로 뒤에는 담마의 덕을 기리는 정형구가 이어진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

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은 스스로 볼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하고, [자신 안으로] 이끌어 들일 만하며, 지혜로운 이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깃발 경」, SN 11.3 등

『청정도론』 제7장은 이 여섯 가지 덕도 하나하나 풀이한다. 먼저 짚어 둘 점은 여기서 말하는 ‘법’에 두 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경전에 담긴 가르침 자체, 곧 교학의 법(pariyattidhamma)이고, 다른 하나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실현하는 출세간(出世間)의 법, 곧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와 열반을 합한 아홉 가지 법이다. 『청정도론』은 첫 번째 덕에는 교학의 법도 포함되지만 나머지 다섯 가지 덕은 출세간의 법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스스로 볼 수 있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은 경전을 읽기만 하면 곧바로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성취한 이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표 1-2a여섯 가지 덕은 어느 층의 법에 해당하는가
덕교학의 법
경전의 가르침
출세간의 법 아홉
네 도·네 과·열반
svākkhāto 잘 설해진
sandiṭṭhiko 스스로 볼 수 있는
akāliko 시간이 걸리지 않는
ehipassiko 와서 보라고 할 만한
opaneyyiko 이끌어 들일 만한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 각자 알아야 하는
표 1-2담마의 여섯 가지 덕 (『청정도론』 제7장의 풀이에 따름)
원어와 옮김뜻풀이
svākkhāto잘 설해진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표현을 갖추어 완전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낸다.
sandiṭṭhiko스스로 볼 수 있는도와 과를 성취한 성자가 남의 말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앎으로 직접 본다.
akāliko시간이 걸리지 않는도의 마음이 일어나면 시간의 간격 없이 곧바로 그 과가 뒤따른다.
ehipassiko와서 보라고 할 만한실제로 존재하고 청정하므로 누구에게나 ‘와서 이 법을 보라’고 권할 수 있다.
opaneyyiko이끌어 들일 만한자기 옷에 불이 붙었더라도 그것을 제쳐 두고 자신의 마음 안으로 이끌어 들일 만하며, 수행자를 열반으로 이끈다.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지혜로운 이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스승이 제자의 도를 대신 닦아 줄 수 없듯이, 각자가 ‘나는 도를 닦았다, 과를 얻었다’고 스스로 알아야 한다.

akāliko는 흔히 ‘시간을 초월한’이라고 옮겨져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진리라는 뜻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주석서의 주된 풀이는 표에서 보듯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간의 선업은 과보를 맺기까지 다음 생이나 그 뒤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출세간의 도는 성취되는 바로 그 순간 과로 이어진다. 같은 단어도 주석 전통에 비추어 읽을 때 뜻이 정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강좌가 경전과 함께 주석서를 중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가, 가르침을 실현하는 이들

상가(saṅgha)는 본래 ‘무리’, ‘모임’이라는 뜻의 일상어다. 불교에서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쓰이며, 이 둘을 구별해 두는 것이 삼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출가자들의 공동체 sammutisaṅgha

구족계(upasampadā)를 받은 비구(bhikkhu)들의 비구 상가와 비구니(bhikkhunī)들의 비구니 상가. 붓다가 제정한 율(vinaya)에 따라 운영된다.

가르침과 율을 이천오백 년 넘게 보존해 온 주체.

성자들의 공동체 ariyasaṅgha

경전이 ‘세존의 제자 상가’라 부르는 네 쌍 여덟 부류의 성자들. 재가자라도 도와 과를 성취했다면 원리상 여기에 속한다.

삼귀의에서 귀의의 대상이 되는 상가.

첫째는 출가자들의 공동체로서의 상가다.1 「대반열반경」(DN 16)에서 붓다는 비구, 비구니, 남성 재가 신자(upāsaka), 여성 재가 신자(upāsikā)라는 네 무리의 제자, 곧 사부대중이 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며 가르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만 엄밀한 의미의 ‘상가’라는 말은 재가 신자의 모임에는 쓰지 않는다.

둘째는 성자(聖者)들의 공동체로서의 상가다. 경전은 이를 ‘세존의 제자 상가’라고 부르며 그 덕을 이렇게 찬탄한다.

S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a.

세존의 제자 상가는 잘 도를 닦고, 바르게 도를 닦고, 참되게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는다. 곧 네 쌍의 사람들이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니, 이러한 세존의 제자 상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깃발 경」, SN 11.3 등

‘네 쌍의 사람들이요 여덟 부류의 사람들’(사쌍팔배)이란 해탈에 이르는 네 단계의 성자를 가리킨다. 흐름에 든 이(수다원), 한 번만 돌아오는 이(사다함), 돌아오지 않는 이(아나함), 모든 번뇌를 끊은 이(아라한)의 네 단계에 각각 번뇌를 끊는 순간인 ‘도’(magga)와 그 결과인 ‘과’(phala)가 있으므로, 쌍으로 묶으면 넷이 되고 따로 헤아리면 여덟이 된다.

그림 1-4네 쌍 여덟 부류의 성자 (사쌍팔배)

범부 puthujjana성자가 아닌 보통 사람. 수다원의 도에 이르는 순간 범부를 벗어나 성자가 된다.
흐름에 든 이
sotāpanna
한 번 돌아오는 이
sakadāgāmī
돌아오지 않는 이
anāgāmī
아라한
arahant
도 magga
① 수다원도번뇌를 끊는 순간
③ 사다함도
⑤ 아나함도
⑦ 아라한도
과 phala
② 수다원과그 결과
④ 사다함과
⑥ 아나함과
⑧ 아라한과

세로로 묶으면 네 쌍, 칸마다 헤아리면 여덟 부류가 된다. 각 성자가 어떤 번뇌를 끊는지는 마지막 편 ‘해탈’에서 자세히 살핀다.

여기서는 성자가 아닌 보통 사람을 ‘범부’(puthujjana)라고 부르며 수다원의 도에 이르는 순간 범부를 벗어나 성자가 된다는 것만 기억해 두자. 좋은 밭에 뿌린 씨앗이 풍성한 수확을 내듯 이들에게 올린 공양은 공덕이 크게 자라기에 ‘복밭’(puññakkhetta)이라고 부른다.

주석서에 따르면 삼귀의에서 귀의의 대상인 상가는 이 성자들의 상가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곧 귀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재가자라도 도와 과를 성취했다면 원리상 성자들의 상가에 속한다. 그러나 출가자의 상가는 붓다의 가르침과 율을 이천오백 년 넘게 보존해 온 주체이며, 성자들의 상가가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토대이자 그것을 대표하는 공동체다. 테라와다 사회에서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법을 전하는 관계는 이런 이해 위에 서 있다.

좋은 벗이 청정한 삶의 전부

상가라는 보배가 일상 수행과 가장 가깝게 맞닿는 지점은 ‘좋은 벗’(kalyāṇamitta)이라는 가르침이다. 「절반 경」(SN 45.2)에서 아난다 존자가 좋은 벗과 함께하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절반쯤은 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Mā hevaṃ, ānanda, mā hevaṃ, ānanda. Sakalamevidaṃ, ānanda, brahmacariyaṃ, yadidaṃ kalyāṇamittatā kalyāṇasahāyatā kalyāṇasampavaṅkatā.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좋은 벗과 사귀고 좋은 동료와 함께하고 좋은 이들과 가까이하는 것, 이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이다.

「절반 경」, SN 45.2

불교 공부는 홀로 책을 읽고 홀로 앉는 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른 가르침을 전해 줄 스승과 함께 계를 지키고 수행하며 서로를 경책해 줄 도반을 만나는 일 자체가 길의 핵심이다.

  1. 스리랑카의 비구니 상가는 대략 11세기 무렵 전란 등으로 계맥이 끊어졌고, 이 때문에 테라와다에서는 오랫동안 율에 맞는 비구니 수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20세기 말부터 비구니 수계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율적 정당성을 두고는 지금도 입장이 엇갈린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

테라와다의 거의 모든 의식은 “그분 세존, 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께 예경합니다”(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라는 예경을 세 번 왼 뒤 삼귀의로 이어진다.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Saṅghaṃ saraṇaṃ gacchāmi.

나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나는 담마에 귀의합니다.
나는 상가에 귀의합니다.

「삼귀의」, Khp 1

같은 구절을 “두 번째에도”(dutiyampi), “세 번째에도”(tatiyampi)라는 말을 붙여 두 번 더 되풀이한다. ‘귀의한다’로 옮긴 saraṇaṃ gacchāmi는 글자대로 ‘의지처로 간다’는 뜻이며, 주석서는 여기서 ‘간다’가 ‘안다’, ‘이해한다’는 뜻도 지닌다고 풀이한다. 귀의란 무엇이 참된 의지처인지를 알고 마음으로 그것을 향하는 일이다.

무엇이 참된 의지처인가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의지하며 산다. 『담마빠다』는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의지처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그리고, 참된 의지처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Bahuṃ ve saraṇaṃ yanti, pabbatāni vanāni ca;
ārāmarukkhacetyāni, manussā bhayatajjitā.

두려움에 쫓긴 사람들은 수많은 곳에 의지하러 간다.
산과 숲으로, 동산과 나무와 사당으로.

N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 netaṃ saraṇamuttamaṃ;
netaṃ saraṇamāgamma, sabbadukkhā pamuccati.

그러나 이것은 안온한 의지처가 아니며, 이것은 으뜸가는 의지처가 아니다.
이러한 의지처에 이르러서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Yo ca buddhañca dhammañca, saṅghañca saraṇaṃ gato;
cattāri ariyasaccāni, sammappaññāya passati.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귀의한 이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바른 지혜로 본다.

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 etaṃ saraṇamuttamaṃ;
etaṃ saraṇamāgamma, sabbadukkhā pamuccati.

이것이야말로 안온한 의지처이며, 이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의지처이다.
이러한 의지처에 이르러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Dhp 188–190, 192

산이나 사당에 의지하는 것은 두려움을 잠시 달래 줄 수는 있어도 괴로움의 뿌리를 뽑지는 못한다. 삼보에 귀의한 이는 그 귀의를 통해 결국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스스로 보게 되며, 바로 그 봄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율장 주석서 『사만따빠사디까』는 ‘의지처’(saraṇa)라는 말을 “[두려움을] 없애기(hiṃsati) 때문에 의지처”라고 풀이하면서, 귀의한 이들에게 그 귀의가 두려움과 괴로움과 나쁜 곳에 태어나는 고통을 없애 주기에 삼보를 의지처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흔들리는 귀의와 흔들림 없는 귀의

같은 주석서는 귀의를, 삼보에 대한 청정한 믿음과 존중으로 번뇌가 제거되어 삼보를 최후의 의지처로 삼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소리 내어 삼귀의를 외는 행위보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의 상태가 귀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주석서는 또 귀의를 두 가지로 나눈다.

세간적 귀의 lokiya

범부들의 귀의. 믿음에 바탕을 두며, 삼보에 대한 무지나 의심 때문에 흐려질 수 있고, 다른 스승을 궁극적 의지처로 삼을 때 깨어진다.

출세간적 귀의 lokuttara

성자가 도를 성취하는 순간 사성제를 꿰뚫어 보면서 성취되는 귀의. 한 번 이루어지면 다음 생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 설명은 입문자에게 두 가지를 알려 준다. 첫째, 처음 삼보에 귀의하는 우리의 귀의는 아직 흔들릴 수 있으므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삼보의 덕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귀의를 점점 굳건하게 가꾸어 가야 한다. 둘째, 그 귀의가 향하는 목적지는 사성제를 스스로 꿰뚫어 보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귀의에 이르는 것이다. 경전이 흐름에 든 이의 특징으로 삼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aveccappasāda)을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가 신자가 된다는 것

「마하나마 경」(AN 8.25)에서 사꺄족의 마하나마가 어떻게 하면 재가 신자가 되느냐고 묻자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Yato kho, mahānāma, buddhaṃ saraṇaṃ gato hoti, dhammaṃ saraṇaṃ gato hoti, saṅghaṃ saraṇaṃ gato hoti, ettāvatā kho, mahānāma, upāsako hoti.

마하나마여, 붓다께 귀의하고 담마에 귀의하고 상가에 귀의하면, 마하나마여, 그것으로 재가 신자가 된다.

「마하나마 경」, AN 8.25

재가 신자가 되는 문은 이렇게 단순하다. 그러나 같은 경에서 마하나마가 재가 신자는 어떻게 ‘계를 갖춘’ 이가 되느냐고 묻자, 붓다는 다섯 가지 계를 든다.

  1.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2.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다adinnādānā paṭivirato
  3. 삿된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4.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musāvādā paṭivirato
  5. 술과 취하게 하는 것을 삼간다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ṭivirato

오늘날 테라와다 사원에서 삼귀의에 이어 오계를 함께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귀의가 방향을 정하는 일이라면 계는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오계의 각 조항과 그것을 범하는 요건은 뒤의 ‘계’ 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

삼보에 귀의하라는 가르침은 스스로 판단하고 노력하는 일을 포기하고 남에게 기대라는 뜻일까? 「대반열반경」의 다음 구절이 이 오해를 풀어 준다.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 뿐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 뿐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대반열반경」, DN 16

‘섬’으로 옮긴 dīpa는 ‘등불’이라는 뜻도 있어 ‘자등명(自燈明)’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주석서는 홍수 속에서 발 딛고 설 수 있는 섬의 뜻으로 풀이한다. 또 여기서 ‘자신’은 영원한 자아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에게 대신 맡길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실천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붓다는 이 구절 바로 뒤에서 “어떻게 자신을 섬으로 삼는가?”라고 스스로 묻고,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을 닦는 것이 그것이라고 답한다.

붓다가 가르친 법을 자기 몸과 마음에서 직접 실천하는 것이 곧 자신을 섬으로 삼는 길이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삼보가 가리키는 길을 스스로 걷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테라와다라는 전통

테라와다(Theravāda)는 오늘날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불교 전통으로, 한역으로는 상좌부(上座部)라고 한다. 이 전통의 불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이 장로들에 의해 결집된 모습 그대로 전해 왔다는 데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다.

thera장로(長老)
본뜻은 ‘단단한’, ‘확고한’
확립되어 흔들림 없는 이
vāda말씀, 교설
함께 외워 한 소리로
확립된 말
Theravāda장로들이 합송으로 확립하여
변형 없이 전해 온 붓다의 가르침

‘테라’, 흔들림 없이 확립된 이

테라와다는 ‘장로’(長老)를 뜻하는 thera와 ‘말씀’, ‘교설’을 뜻하는 vāda가 합쳐진 말이다. thera는 본래 ‘단단한’, ‘확고한’이라는 뜻을 지니며 여기서 ‘연장자’라는 뜻이 나왔다. 상가에서는 일정한 법랍을 넘긴 비구를 테라, 그보다 훨씬 오래된 비구를 마하테라(대장로)라고 부른다. 그러나 ‘테라’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나이라는 뜻보다 어떻게 살고 수행하고 가르쳐야 하는지가 ‘확립되어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다.1 출가자든 재가자든 다음 세 과정을 거쳐야 테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된다.

  1. 기본을 익힌다처음 몇 해는 한 스승 곁에서 기본을 익힌다.
  2. 실천하여 체험한다다음 몇 해는 배운 것을 실천하여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체험한다.
  3.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다듬는다그 뒤에는 체험한 것을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다듬는다.

경전 역시 나이만으로 장로가 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Na tena thero so hoti, yenassa palitaṃ siro;
paripakko vayo tassa, moghajiṇṇoti vuccati.

머리가 희었다고 해서 그가 장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나이가 무르익었을 뿐이니, 그는 ‘헛되이 늙은 이’라 불린다.

Yamhi saccañca dhammo ca, ahiṃsā saṃyamo damo;
sa ve vantamalo dhīro, thero iti pavuccati.

진실과 법과 해치지 않음과 절제와 자기 길들임이 있는 이,
더러움을 토해 버린 그 지혜로운 이를 참으로 장로라 부른다.

Dhp 260–261

이에 비추어 보면 법랍이 짧더라도 사성제를 체험하고 도와 과에 이르렀다면 그는 이미 테라다. 곧 ‘테라’에는 오래 닦아 삶과 수행이 굳건히 확립되었다는 뜻과, 도와 과를 증득하여 물러설 여지가 없이 확립되었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장로가 갖추어야 할 덕목의 첫째는 ‘많이 배움’(bahussuta)이며, 테라와다에서는 재가자에게도 믿음이 어떻게 확립되고 수행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실에 이르며 계가 어떻게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지를 출가자와 거의 다름없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덮어놓고 믿으라고 하는 법이 없다.2

‘와다’, 함께 외워 확립된 말씀

vāda는 오계의 넷째 항목인 거짓말(musāvāda)에 들어 있는 바로 그 ‘말’이다. 테라와다의 ‘와다’는 그저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외워(합송) 한 소리까지 통일되고 확립된 말, 그리하여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변형 없이 전해지는 말을 가리킨다. 여럿이 “나모 땃사”를 함께 욀 때 누군가 긴소리를 짧게 발음하면 장로가 곧바로 바로잡는 것이 합송이 가르침을 지키는 방식이다.3 그러므로 테라와다란 붓다의 말씀을 장로들이 합송으로 확립하여 변형 없이 전해 온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학계에서는 흔히 테라와다라는 부파의 기원을 교단 분열이 일어난 제2결집 이후나 아소까 왕 시대의 제3결집에서 찾는다. 그러나 테라와다 전통 자신의 관점은 다르다. 분열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의 가르침만 있었으므로 따로 이름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을 뿐, 그 가르침은 이미 제1결집 때 삼장으로 확립되었고 테라와다는 그 하나의 줄기를 끊김 없이 이어 온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여러 종파가 저마다 다른 조사를 개조(開祖)로 모시는 것과 달리, 어느 나라에 있든 테라와다의 개조는 오직 붓다 한 분이다.

제1결집과 세 가지 원칙

율장(Vin Cūḷavagga XI)에 따르면, 붓다가 반열반한 뒤 한 늙은 비구가 이제 잔소리하던 스승이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마하깟사빠 존자는, 법이 아닌 것과 율이 아닌 것이 퍼지기 전에 법과 율을 함께 외워 확정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리하여 라자가하에서 오백 명의 아라한이 모여 첫 번째 결집(saṅgīti, ‘함께 노래함’)을 열었다. 율에 가장 정통했던 우빨리 존자가 율을, 붓다를 가장 오래 곁에서 모신 아난다 존자가 법을 외워 내었고, 모인 장로들이 이를 함께 확인하였다. 경전 대부분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evaṃ me sutaṃ)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이 전승을 반영한다.

이 결집에서는 테라와다의 성격을 결정지은 일이 하나 있었다.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반열반 직전에 “상가가 원한다면 내가 떠난 뒤 사소한 학습계율들은 폐지해도 좋다”(DN 16)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사소한 계율인지를 여쭈어 두지 않았기에 장로들의 의견이 갈렸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존자는 스승께서 반열반하시자마자 계율을 버린다면 세상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고, 상가는 이를 승인하였다.

Yadi saṅghassa pattakallaṃ, saṅgho apaññattaṃ na paññapeyya, paññattaṃ na samucchindeyya,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eyya.

상가에게 적절한 때라면, 상가는 [붓다께서] 제정하지 않은 것을 새로 제정하지 않고, 제정하신 것을 없애지 않으며, 제정하신 학습계율을 그대로 받들어 지니고 따라야 합니다.

Vin Cūḷavagga XI; DN 16 참조

그림 1-5테라와다의 세 가지 원칙

  1. 제정되지 않은 것을 새로 제정하지 않는다apaññattaṃ na paññapeyya: 더하지 않는다
  2. 제정된 것을 없애지 않는다paññattaṃ na samucchindeyya: 빼지 않는다
  3. 제정된 학습계율을 그대로 받들어 따른다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eyya

이 세 가지는 붓다 자신이 「대반열반경」에서 비구들이 쇠퇴하지 않는 조건의 하나로 이미 설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세 가지가 테라와다의 원칙이다. 붓다가 정한 것은 법이든 율이든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원칙의 목적은 옛것을 지키는 일 자체에 있지 않다. 계를 지키고 법을 배우는 것은 그것을 실천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그 실천은 결국 마음의 청정과 지혜, 도와 과라는 결실로 드러나야 한다.4

보수성과 적응

이 원칙 때문에 테라와다는 흔히 가장 보수적인 불교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오해다. 붓다가 정한 조항은 바꾸지 않되, 그 조항을 달라진 시대와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는 테라와다 불교권 전체가 끊임없이 토론하여 정해 왔다.

조항은 그대로, 적용은 토론으로

비구는 스스로 음식을 조리할 수 없고 오전에 탁발로 얻은 음식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탁발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날마다 굶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미 지어진 밥을 데우는 것은 스스로 조리하는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식으로, 조항을 어기거나 고치지 않으면서 현실에 맞는 길을 찾아 나간다. 비구가 자동차를 운전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논의된다.

이렇게 정해진 적용은 어느 한 나라만의 예외가 아니라 테라와다 불교권 전체에 통일되게 적용되며, 그래서 한 나라에서 계를 받은 비구도 다른 나라에서 그곳 비구들과 함께 포살을 하고 수행할 수 있다. 같은 까닭에 테라와다에 속한 이라면 출가자든 재가자든 결집을 통해 전해진 경·율·론 삼장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 전제이며, 그 일부를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며 배제하는 것은 테라와다의 길이 아니다.5

합송으로 지킨 가르침과 결집의 역사

제1결집에서 확정된 가르침은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경전 곳곳에서 같은 구절이 되풀이되고 가르침이 숫자별로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암송에 알맞도록 다듬어진 흔적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네 니까야는 각각 다른 장로의 제자 무리에게 맡겨져 전해졌다고 한다.

표 1-3a네 니까야의 암송 전승 (주석서에 따름)
니까야맡아 전한 이들
『디가 니까야』아난다 존자의 제자들
『맛지마 니까야』사리뿟따 존자의 제자들
『상윳따 니까야』마하깟사빠 존자의 제자들
『앙굿따라 니까야』아누룻다 존자의 제자들

이런 합송 전승에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한 사람이 글로 적는다면 자기 견해가 섞여 들기 쉽지만, 여럿이 함께 외워 전하는 가르침은 누군가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고, 오래 교류가 없던 두 무리가 만나 각자 외워 온 것을 맞추어 보면 어긋난 곳이 곧바로 드러나며, 후대에 덧붙인 내용이 있으면 합송하는 자리에서 그것이 덧붙여진 부분임을 밝혀 전하게 된다.6 서로 다른 부파가 전한 한역 『아함경』과 빠알리 『니까야』의 핵심 교설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런 전승이 매우 안정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반열반 후 약 백 년이 지나 웨살리에서 열린 두 번째 결집(Vin Cūḷavagga XII)에서는 일부 비구들이 허용한 열 가지 사항이 율에 어긋난 것으로 판정되었다. 이후 교단은 여러 부파로 나뉘게 되는데, 대체로 전통을 엄격히 지키려는 장로들의 계통과 대중부 계통이 먼저 나뉘고 다시 여러 부파로 갈라져 흔히 ‘십팔 부파’라 불리는 부파불교 시대가 열렸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배우는 이런 불교사는 교단이 분열을 거듭하며 발전해 갔다는 대승불교의 시각에서 서술된 것이다. 테라와다의 시각에서는 붓다 당시부터 하나의 줄기가 끊김 없이 이어져 왔고 여러 갈래는 그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며, 떨어져 나간 부파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갈라지지 않고 이어진 줄기는 오늘날까지 테라와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7

표 1-3테라와다 전통이 헤아리는 여섯 차례의 결집

  1. 반열반 직후라자가하

    마하깟사빠 존자 주도, 아라한 오백 명. 우빨리 존자가 율을, 아난다 존자가 법을 외워 확정.

  2. 반열반 후 약 100년웨살리

    비구 칠백 명. 율에 어긋나는 열 가지 사항을 판정.

  3. 아소까 왕 시대빠딸리뿟따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 주도. 『까타왓투』 편찬, 여러 지역에 전법 사절 파견 (빠알리 연대기).

  4. 기원전 1세기스리랑카

    왓타가마니 왕 시대. 입으로 전하던 삼장과 주석을 처음으로 글로 기록 (『마하왕사』).

  5. 1871년미얀마 만달레이

    민돈 왕 후원. 삼장을 대조·교정하여 700여 개의 대리석판에 새김.

  6. 1954~1956년미얀마 양곤

    여러 테라와다 국가의 장로들이 삼장과 주석서를 대조·합송. 오늘날의 제6차 결집본.

제3결집은 다른 부파의 문헌에는 전하지 않아 학계에서는 테라와다 계통 내부의 결집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제4차 이후를 헤아리는 방식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빠알리 연대기에 따르면 제3결집 뒤 아소까 왕의 아들로 전해지는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에 가르침을 전했고, 데와낭삐야 띳사 왕이 아누라다뿌라에 세운 마하위하라(Mahāvihāra, 대사)가 오늘날 테라와다가 계승하는 전통의 본산이 되었다. 5세기에는 인도 출신의 붓다고사 장로가 이곳에 머물며 싱할라어로 전해 오던 주석들을 빠알리어로 옮기고 정리하여, 오늘날 테라와다 교학의 표준이 된 주석서들과 『청정도론』을 지었다.

이 전통은 11세기 무렵 미얀마 바간 왕조, 13세기 무렵 태국 수코타이 왕조 등을 거쳐 동남아시아 대륙부로 퍼졌고, 18세기 스리랑카의 계맥이 쇠퇴하자 태국에서 비구들을 초청해 되살리는 등 테라와다 국가들은 서로 계맥과 경전을 주고받으며 전통을 보존해 왔다. 20세기에는 미얀마의 레디 사야도, 마하시 사야도 등을 통해 재가자도 체계적으로 위빳사나를 닦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 흐름이 세계로 퍼져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여러 테라와다 수행 도량이 자리 잡았다.

그림 1-6테라와다가 전해진 길 (실제 지도가 아닌 개념도)

인도 마가다 제3결집, 아소까 왕 시대 마힌다 장로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 마하위하라, 5세기 붓다고사 미얀마 바간 11세기 무렵 태국 수코타이 13세기 무렵 라오스·캄보디아 18세기, 스리랑카의 계맥을 되살림 세계 곳곳과 우리나라 20세기 레디·마하시 사야도

‘테라와다 불자’가 된다는 것

어떤 가르침에 ‘불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으려면 그 가르침을 따라 붓다가 이른 것과 같은 경지에 이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나와야 하며, 개인도 붓다가 가르친 방향을 알고 실제로 걸어가는 사람이라야 불자라고 할 수 있다.8 재가자가 테라와다 불자가 되는 기본 조건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 확립되는 것이다.

붓다Buddha‘나의 스승은 붓다 한 분’이라는 믿음이 흔들림 없이 서 있다.
담마Dhamma붓다의 가르침이 사성제와 팔정도와 삼특상임을 분명히 안다.
상가Saṅgha붓다를 따라 아라한이 된 제자들을 스승으로 공경한다.

여기에 계를 지키는 것이 더해진다. 이 설명은 경전이 흐름에 든 이의 네 가지 구성요소로 삼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드는 것(SN 55)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확립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여 체험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두 가지 오해

테라와다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테라와다를 ‘소승’(小乘, Hīnayāna)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빤냐와로 스님에 따르면 이 말은 기원 전후 무렵 새로운 대승 경전을 받드는 이들이 스스로를 ‘큰 수레’라 부르면서 전통적인 불교를 ‘작고 뒤떨어진 수레’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대승 이전의 부파불교 전체, 설일체유부, 오늘날의 테라와다라는 세 가지 뜻이 뒤섞여 쓰인다.

이 말을 쓰는 마음에는 남을 낮추려는 마음이 깔려 있기 마련이어서 불자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테라와다는 부파불교 시대에 갈라져 나온 한 부파가 아니라 갈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줄기이므로 그 시대의 논쟁에서 생겨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9 20세기 중반 세계 불교도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 말을 쓰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살아 있는 전통을 가리킬 때는 그 전통이 스스로 쓰는 이름인 ‘테라와다’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고 예의에도 맞는다.

또 하나는 테라와다와 ‘초기불교’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오해다. 두 접근은 많은 부분이 겹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초기불교 학문 용어

부파가 나뉘기 이전, 곧 붓다와 직계 제자들의 시대의 불교.

학자들은 빠알리 경전과 다른 부파의 한역 경전 등을 비교하여 그 모습을 재구성하려 한다.

테라와다 살아 있는 전통

이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으로, 빠알리 삼장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를 아비담마와 주석서의 해석 체계에 따라 이해하고 실천해 왔다.

이 강좌는 테라와다 전통의 입장에 서서 경전을 뿌리로 삼고 주석서를 그 뿌리를 이해하는 정통 해석으로 삼는다.

  1.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의 가르침」.
  2. 같은 법문.
  3. 같은 법문.
  4. 같은 법문.
  5.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의 가르침」;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6.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의 가르침」.
  7. 같은 법문.
  8. 같은 법문.
  9.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이야기: 테라와다를 소승이라 부르지 말자」;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의 가르침」.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

테라와다의 경전을 빠알리 삼장(Tipiṭaka, ‘세 개의 광주리’)이라고 한다. ‘빠알리’(pāli)라는 말은 본래 언어 이름이 아니라 ‘(경전의) 본문’이라는 뜻이었다. 주석서들이 풀이 대상인 원문을 ‘빠알리’라고 불러 자신들, 곧 ‘뜻의 설명’(aṭṭhakathā)과 구별하다가, 뒤에 이 말이 그 원문의 언어를 가리키게 되었다. 테라와다 전통은 이 언어를 붓다가 쓰셨던 마가다어라고 여겨 왔으며, 현대 언어학은 붓다 시대 북인도의 여러 구어와 가까운 문헌어로 본다. 빠알리어에는 고유한 문자가 없어 각 나라의 문자와 로마자로 적어 왔다.

오늘날 한 전통의 경·율·론 삼장이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은 빠알리 삼장뿐이므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이는 빠알리 삼장에 의지해 공부해야 하지만, 빠알리어 자체가 해탈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며 번역으로 공부해도 충분하다.1 테라와다 국가의 재가 신자들도 삼귀의와 오계, 몇몇 짧은 경을 빼면 대부분 자기 나라 말로 옮긴 경전을 읽고 왼다. 독송할 때도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뜻을 이해하며,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며, 뜻을 모른 채 소리만 따라 외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표 1-4빠알리 삼장의 구성과 주요 주석서

율장Vinayapiṭaka

  • 『숫따위방가』: 비구·비구니 계목과 각 조항의 제정 인연·해설
  • 『칸다까』(『마하왁가』·『쭐라왁가』): 수계·포살·안거 등 공동체 운영 규정
  • 『빠리와라』: 요약과 분석

주요 주석서『사만따빠사디까』 (붓다고사)

경장Suttapiṭaka

  • 『디가 니까야』: 긴 경 34개
  • 『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의 경 152개
  • 『상윳따 니까야』: 주제별 56상윳따
  • 『앙굿따라 니까야』: 법수(法數)별 11니빠따
  • 『쿳다까 니까야』: 짧은 경전 모음 15권 (전통에 따라 18권)

주요 주석서『수망갈라윌라시니』(DN), 『빠빤짜수다니』(MN), 『사랏타빠까시니』(SN), 『마노라타뿌라니』(AN) (이상 붓다고사). 『쿳다까 니까야』는 권마다 별도의 주석서가 있다.

논장Abhidhammapiṭaka

  • 『담마상가니』
  • 『위방가』
  • 『다뚜까타』
  • 『뿍갈라빤냣띠』
  • 『까타왓투』
  • 『야마까』
  • 『빳타나』

주요 주석서『앗타살리니』, 『삼모하위노다니』, 『빤짜빠까라나 앗타까타』

테라와다 비구 계목은 227조, 비구니 계목은 311조이다.

율장은 출가 공동체의 규범을 담되 규칙만 나열하지 않고 각 조항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제정되었는지를 함께 전하므로, 초기 교단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경장은 붓다와 제자들의 설법을 모은 것으로 입문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삐따까다. ‘니까야’(nikāya)는 ‘모음’이라는 뜻이며, 『쿳다까 니까야』에는 『담마빠다』, 『숫따니빠따』, 장로와 장로니들의 게송인 『테라가타』·『테리가타』, 붓다의 전생 이야기인 『자따까』 등 성격이 다양한 문헌이 들어 있다.

논장, 곧 아비담마(Abhidhamma)는 경장의 가르침을 마음, 마음부수, 물질, 열반이라는 궁극적 요소로 분석하고 그 관계를 체계화한 것이다. 주석서는 경장을 듣는 이의 근기에 맞추어 관습적 표현으로 설한 가르침이라 하고, 아비담마를 그런 방편을 떠나 법 그 자체의 차원에서 설한 가르침이라 하여 구별한다. ‘아비’(abhi)는 ‘뛰어난’, ‘특별한’이라는 뜻의 접두어인데, 이를 ‘붓다의 가르침보다 더 뛰어난 법’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아비담마는 경장의 다양한 가르침 가운데 진리에 이르는 데 필요한 것만 추려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기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2

테라와다 전통은 붓다가 삼십삼천에서 신들에게 아비담마를 설하고 그 요지를 사리뿟따 존자에게 전했다고 전하며, 현대 학계는 아비담마 문헌이 붓다의 입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화된 것으로 본다. 입문 강좌인 이 강좌는 아비담마의 세부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 틀이 이해를 크게 돕는 대목에서는 핵심을 필요한 만큼 소개할 것이다.

주석서와 『청정도론』

경전은 간결하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명했던 맥락이 생략되어 있고, 같은 낱말도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며, 여러 경에 흩어진 가르침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경 자체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찍부터 경전과 함께 그 뜻을 풀이하는 전승이 전해졌는데, 이것이 주석서(aṭṭhakathā)다. 테라와다 전통에 따르면 그 뿌리는 결집 무렵부터 경전과 함께 전해진 풀이이며, 스리랑카에서 싱할라어로 전승되다가 5세기에 붓다고사 장로가 빠알리어로 옮기고 정리하였다. 주석서를 다시 풀이한 복주서(ṭīkā)도 있다.

붓다고사 장로가 지은 『청정도론』(Visuddhimagga)은 주석 전통 전체의 요강이라 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다음 게송을 뼈대로 삼아, 붓다의 가르침 전체를 계·삼매·지혜의 순서로 체계화하였다.

Sīle patiṭṭhāya naro sapañño, cittaṃ paññañca bhāvayaṃ;
ātāpī nipako bhikkhu, so imaṃ vijaṭaye jaṭaṃ.

지혜로운 이가 계에 굳건히 서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을 때,
열성 있고 슬기로운 그 비구는 이 엉킴을 풀어낸다.

「엉킴 경」, SN 1.23 (『청정도론』 첫머리)

‘엉킴’이란 안팎으로 얽혀 있는 갈애를 가리킨다. 게송의 ‘계’는 계를, ‘마음’은 삼매를, ‘통찰지’는 지혜를 가리키니, 『청정도론』의 세 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이 밖에 아누룻다 장로의 『아비담맛타상가하』는 방대한 아비담마를 간명하게 요약한 책으로, 오늘날까지 아비담마 입문 교과서로 쓰인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경전과 주석서와 후대의 수많은 저술, 여러 스승의 가르침이 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대반열반경」에서 붓다는 이 물음에 대한 원칙을 직접 남겼다. 누군가 “나는 이것을 세존께 직접 들었다”거나 “어느 상가에게서”, “어느 장로에게서 들었다”고 하며 무언가를 법이요 율이라고 주장할 때, 곧바로 받아들이지도 말고 무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t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 그 말과 표현을 잘 익힌 뒤에 경에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대반열반경」, DN 16

대조해 보아 경과 율에 맞지 않으면 세존의 말씀이 아니니 버리고, 맞으면 받아들이라는 이 원칙을 ‘네 가지 큰 기준’(mahāpadesa)이라고 한다. 네 가지란 세존께 직접 들었다는 주장, 어느 상가에게서 들었다는 주장, 여러 장로에게서 들었다는 주장, 한 장로에게서 들었다는 주장의 넷을 가리키며, 어느 경우든 같은 시험을 거친다. 『사만따빠사디까』는 이 정신을 이어 권위의 순서를 다음 네 단계로 정리한다.

경전 자체sutta가장 강한 근거
경전에 부합하는 것suttānuloma경전에 맞을 때
스승들의 설명ācariyavāda곧 주석서
개인의 견해attanomati가장 약한 근거

뒤의 것은 앞의 것에 맞을 때만 받아들이며, 개인의 견해를 가장 약한 근거로 여긴다. 빤냐와로 스님이 테라와다의 ‘기준점’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뜻이다. 기준은 오직 붓다의 가르침이며, 가르치는 스님이 훌륭하다고 해서, 어느 조사가 뛰어나다고 해서 그 말이 곧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의 말이든 붓다의 가르침에 비추어 맞으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방하며, 이 기준이 출가자와 재가자를, 스승과 제자를 하나로 묶어 준다.3 이 강좌도 이 순서를 따른다.

  1.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2. 같은 법문.
  3. 같은 법문.

믿음과 탐구

불교에 대해서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적인 철학’이라는 이미지와 ‘경전에 쓰인 것을 그대로 믿으면 된다’는 이미지가 함께 떠돈다. 경전이 보여 주는 모습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이 아니다.

깔라마 경, 스스로 알라

「께사뭇띠 경」(AN 3.65), 흔히 「깔라마 경」으로 불리는 경에서 깔라마 사람들은 여러 사문과 브라만이 저마다 자기 교설만 옳다고 하며 남을 헐뜯으니 누구의 말이 참인지 알 수 없다고 붓다에게 여쭙는다. 붓다는 먼저 그들의 의심이 당연하다고 인정한 뒤 이렇게 설한다.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a.

깔라마들이여, 거듭 들어 왔다고 해서, 대대로 전해 왔다고 해서, 소문이 그렇다고 해서, 경전에 전해진다고 해서, 추론에 따라, 논리적 추리에 따라, 그럴듯한 이유를 헤아려서, 자신이 숙고해 온 견해와 맞는다고 해서, 말하는 이가 유능해 보인다고 해서,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법들은 해롭고, 허물이 있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비난하는 것이고, 받아들여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그대들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때 그것들을 버려라.

「께사뭇띠 경」, AN 3.65

이 경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을 때 흔히 근거로 삼는 권위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게 하는 가르침이다. 아래의 열 가지 근거를 하나씩 눌러 내려놓아 보자.

붓다가 ‘그것만으로는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 열 가지 근거. 누르면 내려놓고, 다시 누르면 되돌린다.

전해 들은 것
머릿속의 헤아림
말하는 사람

내려놓은 근거 0 / 10

책에 쓰여 있든, 오랜 전통이 있든, 훌륭한 스승의 말이든 그것만으로 진실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스스로 실천하여 확인한 뒤에 따르라는 것이다. 테라와다는 이것을 첫 번째 기준점으로 삼는다. 배운 것을 실천하여 자기 마음에서 탐욕과 성냄이 줄어드는 것을 체험으로 실증해 감으로써 막연한 신앙이 아니라 지혜에 바탕을 둔 확신을 얻는 것이 불교의 길이다.1

이 경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세 가지 있다.

  1. 추론과 자기 견해도 내려놓을 근거에 들어 있다붓다가 내려놓으라고 한 열 가지에는 경전과 전통뿐 아니라 추론과 논리적 추리, 자신이 숙고해 온 견해와 맞는다는 것까지 들어 있다. 이 경은 ‘내 이성이나 취향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머릿속의 추론과 자기 견해 역시 검증 없이 기댈 근거가 못 된다는 가르침이다.
  2. 지혜로운 이들의 판단이 기준에 포함된다판단 기준에 ‘지혜로운 이들이 비난하는 것인가’가 들어 있다. 스스로 안다는 것은 혼자만의 판단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이들의 판단에 비추어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는 일을 포함한다.
  3. 지금 여기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붓다는 이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게 되고 어떤 괴로움을 겪는지를 깔라마 사람들 스스로 확인하게 한다. ‘스스로 알라’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자기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경의 끝에서 붓다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린 이는 다음 세상과 업의 과보가 있다면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고 설령 없더라도 지금 이 삶에서 원한 없이 행복하게 산다고 설한다. 윤회처럼 당장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붓다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어느 경우에나 이 길이 이롭다는 것을 스스로 헤아리게 한다.

검증된 믿음

그렇다면 불교에서 믿음(saddhā)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전은 믿음을 수행을 이끄는 다섯 가지 기능(오근)의 첫째로 꼽으며, “믿음으로 거센 물을 건넌다”(saddhāya tarati oghaṃ, Sn 1.10)고 노래한다. 다만 그 믿음은 맹신이 아니다. 「검증자 경」(MN 47)에서 붓다는 비구들에게 여래의 행동과 말을 오랫동안 살펴 오염된 상태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한 뒤에 믿음을 두라고, 붓다 자신마저 검증하라고 가르친다.

「짱끼 경」(MN 95)은 믿음이 어떻게 진리의 실현으로 이어지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 준다.

그림 1-7믿음에서 진리의 실현까지 (MN 95의 흐름을 간추림)

  1. 스승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saddhā
  2. 스승을 찾아가 법을 듣는다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인다
  3. 들은 법을 기억한다dhāreti
  4. 그 뜻을 검토한다atthaṃ upaparikkhati
  5. 숙고하여 받아들인다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6. 열의를 내어 정진한다chanda, padhāna
  7. 진리를 몸으로 실현한다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믿음은 탐구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탐구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며, 실천을 거쳐 체험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같은 경에서 붓다는 아직 진리를 실현하지 못한 사람이 지켜야 할 지적인 정직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Saddhā cepi, bhāradvāja, purisassa hoti; ‘evaṃ me saddhā’ti – iti vadaṃ saccamanurakkhati, na tveva tāva ekaṃsena niṭṭhaṃ gacchati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바라드와자여,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있을 때, 그가 ‘나의 믿음은 이러하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진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직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단정적인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짱끼 경」, MN 95

뗏목의 비유

「뱀의 비유 경」(MN 22)은 가르침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두 비유를 전한다.

물뱀의 비유

물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잘못 잡으면 뱀이 몸을 돌려 무는 것처럼, 법을 배우되 그 뜻을 지혜로 검토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거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배우는 이에게는 그 법이 오히려 오랜 해로움을 가져온다. 가르침을 시비를 가리거나 남과 다투기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되며, 설익은 사람일수록 남을 비판하고 잘 익은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다.2

다음은 널리 알려진 뗏목의 비유다. 위험한 이쪽 언덕에서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넌 사람이 뗏목이 고맙다고 그것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면 뗏목을 바르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Evameva kho, bhikkhave, kullūpamo mayā dhammo desito nittharaṇatthāya, no gahaṇatthāya. Kullūpamaṃ vo, bhikkhave, dhammaṃ desitaṃ ājānantehi dhammāpi vo pahātabbā, pageva adhammā.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닌 뗏목의 비유로 법을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뗏목의 비유로 설한 법을 아는 그대들은 법들마저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뱀의 비유 경」, MN 22

그림 1-8뗏목은 언제 내려놓는가

이쪽 언덕 위험과 두려움 저 언덕 안온함, 열반 건너는 동안 온 힘으로 붙잡는다 건넌 뒤 내려놓는다 강 한가운데서 뗏목을 버리는 이는 없다

이 비유는 종종 ‘깨달으면 가르침도 계율도 필요 없다’는 뜻으로 오해되지만, 주석서는 버려야 할 ‘법들’을 사마타와 위빳사나 같은 훌륭한 경지에 대한 집착으로 풀이한다. 무엇보다 뗏목은 강을 다 건넌 뒤에 내려놓는 것이지 강 한가운데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아직 강을 건너고 있는 우리에게 가르침은 온 힘을 다해 붙잡아야 할 뗏목이며, 다만 그것을 붙잡는 목적이 다투거나 자신을 내세우는 데 있지 않고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이야기: 테라와다 불교의 기준점」;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2.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교학·실천·통찰, 그리고 이 강좌의 길

테라와다의 주석 전통은 바른 가르침(saddhamma)을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한다.

교학pariyatti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 없이 정확하게 배우는 것.

실천paṭipatti

배운 것을 수행으로든 일상생활에서든 반드시 실행하는 것.

통찰paṭivedha

실천을 통해 쌓인 체험으로 자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스스로 분명히 아는 것.

‘만족할 줄 알라’는 가르침을 배웠다면 실제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 자기 안에 참된 만족감이 일어나게 해야 배움이 완전해지며, 통찰에 남의 인정은 아무 의미가 없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결실을 스스로 알 길도 없다.1 옛 스리랑카에서는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숲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이들과 경전을 설하던 이들 사이에, 교법의 근본이 실천에 있는가 교학에 있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결론은 교학이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배움이 없으면 수행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도 바로잡을 근거가 없으니, 교학이 실천과 통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붓다의 가르침

이 편 첫머리에 실은 『담마빠다』 183번 게송은 뒤이은 두 게송과 함께 과거의 붓다들이 공통으로 설한 가르침으로 전해진다(DN 14).

Khantī paramaṃ tapo titikkhā, nibbānaṃ paramaṃ vadanti buddhā;
na hi pabbajito parūpaghātī, na samaṇo hoti paraṃ viheṭhayanto.

인내와 참음은 최고의 수행이요, 붓다들은 열반을 최고라고 말씀하신다.
남을 해치는 이는 출가자가 아니며, 남을 괴롭히는 이는 사문이 아니다.

Anūpavādo anūpaghāto, pātimokkhe ca saṃvaro;
mattaññutā ca bhattasmiṃ, pantañca sayanāsanaṃ;
adhicitte ca āyogo, etaṃ buddhāna sāsanaṃ.

비방하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계목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며, 외딴 곳에 머물고,
높은 마음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붓다들의 가르침이다.

Dhp 184–185

빤냐와로 스님은 이 세 게송을 차례로 테라와다의 기준점으로 소개한다.2

표 1-5a세 게송이 가리키는 기준점
게송가르침
Dhp 183해탈에 이르는 길을 가라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수행하는 모든 일은 지금 좀 더 행복해지거나 좋은 세상에 태어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선한 마음이 더 많이 더 오래 일어나게 하여 마침내 윤회에서 벗어나는 데로 향해야 한다. 마음챙김이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데 쓰이는 것도 이로운 일이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거기서 멈추면 다른 괴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Dhp 184인내가 최고의 수행며칠씩 굶거나 폭포수를 맞는 고행이 아니라, 좋은 일에 들뜨지 않고 괴로운 일에 무너지지 않는 평온한 마음과 뜻밖의 괴로움을 원망 없이 견디는 인내. 일상 속에서 누구나 닦을 수 있는 최고의 수행이다.
Dhp 185출가 수행자의 삶을 본보기로재가자라도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음식을 절제하고 고요함을 가까이하며 높은 마음을 향해 정진하는 삶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 강좌가 걸어갈 길

이 강좌는 교학에서 실천으로, 실천에서 그 결실로 나아가는 순서로 짜여 있다. 모두 다섯 부 열세 편이다.

표 1-5강좌의 구성

제1부들어가며
1붓다, 담마, 상가
제2부진리의 틀
2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3오온·12처·18계
4무상·괴로움·무아
512연기
제3부바른 견해
6바른 견해와 그릇된 견해
7업
8윤회
제4부실천
9보시
10계
11수행의 기초와 들숨날숨 마음챙김
12위빳사나
제5부결실
13해탈

제2부는 붓다 가르침의 뼈대인 사성제와, 몸과 마음을 분석하여 그 특성과 일어남의 원리를 이해하는 틀을 다룬다. 제3부는 상견과 단견을 비롯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고 업과 재생을 바르게 이해한다. 제4부는 보시·계·수행의 공덕행과 계·삼매·지혜의 실천을, 제5부는 수다원에서 아라한까지 네 쌍 여덟 부류의 성자와 열반을 다룬다.

이 길을 끝까지 걷는 일은 결국 배우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다. 「가나까 목갈라나 경」(MN 107)에서 한 브라만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모두 열반에 이르느냐고 묻자 붓다는 어떤 이들은 이르고 어떤 이들은 이르지 못한다고 답하고,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 주어도 어떤 사람은 그 길을 따라 목적지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엉뚱한 길로 들어서 버린다는 비유를 든다.

Evameva kho, brāhmaṇa, tiṭṭhateva nibbānaṃ, tiṭṭhati nibbānagāmī maggo, tiṭṭhāmahaṃ samādapetā … Ettha kyāhaṃ, brāhmaṇa, karomi? Maggakkhāyī, brāhmaṇa, tathāgato.

브라만이여, 그와 같이 열반은 있고, 열반으로 이끄는 길도 있으며, 그 길로 이끄는 나도 있다. … 브라만이여,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브라만이여, 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이다.

「가나까 목갈라나 경」, MN 107

열반은 있고, 길도 있으며, 그 길을 가리켜 보인 스승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길을 걷는 일이다.

  1. 아짠 빤냐와로, 「테라와다 이야기: 테라와다 불교의 기준점」; 「테라와다 신행생활: 테라와다 불교의 진심」.
  2. 같은 법문들.

용어 정리

이 편에서 처음 만난 빠알리 용어들이다. 읽기는 이 강좌의 한글 표기 원칙을 따랐고, 용례는 이 편에 실린 원문에서 골랐다. 표를 카드로 넘기며 외워 두면 다음 편부터 원문을 읽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표 1-6첫째 편의 용어 서른두 개
번호원어읽기분류뜻용례
1Buddha붓다삼보깨어난 이, 스승 없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이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나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2Dhamma담마삼보붓다가 깨닫고 가르친 진리와 그 가르침, 법Svākkhāto bhagavatā dhammo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
3Saṅgha상가삼보출가자의 공동체, 또는 네 쌍 여덟 부류 성자들의 공동체Saṅghaṃ saraṇaṃ gacchāmi.나는 상가에 귀의합니다.
4tiratana띠라따나삼보세 가지 보배, 삼보(三寶)tiratana붓다·담마·상가의 세 보배
5Tathāgata따타가따붓다의 칭호여래(如來), 붓다가 스스로를 즐겨 부른 이름akkhātāro tathāgatā여래들은 [길을] 알려 줄 뿐이다. (Dhp 276)
6Bhagavā바가와붓다의 칭호세존(世尊), 복덕을 갖추어 존귀하신 분Itipi so bhagavā이러한 이유로 그분 세존은
7bodhisatta보디삿따인물보살,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붓다bodhisatta룸비니에서 태어난 보살 (Sn 3.11)
8arahant아라한성자아라한, 모든 번뇌를 끊은 이, 공양받아 마땅한 이Itipi so bhagavā arahaṃ그분 세존은 아라한이시며
9sammāsambuddha삼마삼붓다붓다의 칭호정등각자,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Namo tassa … sammāsambuddhassa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께 예경합니다
10majjhimā paṭipadā맛지마 빠띠빠다교리중도, 쾌락과 고행의 두 극단을 떠난 길majjhimā paṭipadā첫 설법에서 선언된 중도 (SN 56.11)
11dhammacakkhu담마짝쿠성취법의 눈, 주석서에 따르면 수다원의 도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겨났다
12parinibbāna빠리닙바나사건반열반, 완전한 열반parinibbāna꾸시나라의 두 살라 나무 사이에서 (DN 16)
13sīla실라삼학계, 행위를 깨끗하게 지키는 공부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이러한 것이 계이고, 삼매이며, 지혜이다.
14samādhi사마디삼학삼매, 고요히 집중된 마음Sīlaparibhāvito samādhi계로 충분히 닦인 삼매
15paññā빤냐삼학지혜, 통찰지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삼매로 충분히 닦인 지혜
16āsava아사와번뇌번뇌, 마음에서 흘러나와 윤회에 묶는 오염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마음은 번뇌들로부터 바르게 해탈한다
17ehipassiko에히빳시꼬법의 덕‘와서 보라’고 할 만한ehipassiko누구에게나 와서 이 법을 보라고 권할 수 있는
18akāliko아깔리꼬법의 덕시간이 걸리지 않는, 도에 곧바로 과가 뒤따르는sandiṭṭhiko akāliko스스로 볼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19pariyatti빠리얏띠정법교학, 가르침을 정확하게 배우는 것pariyattidhamma경전에 담긴 가르침, 교학의 법
20paṭipatti빠띠빳띠정법실천, 배운 것을 실행하는 것paṭipatti수행으로든 일상에서든 실행함
21paṭivedha빠띠웨다정법통찰, 실천으로 진리를 꿰뚫어 앎paṭivedha이른 경지를 스스로 분명히 앎
22puthujjana뿌툿자나사람범부, 아직 성자가 되지 못한 보통 사람puthujjana수다원의 도에 이르면 범부를 벗어난다
23magga · phala막가 · 팔라성취도(번뇌를 끊는 순간)와 과(그 결과)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네 쌍의 사람들이요 여덟 부류의 사람들
24puññakkhetta뿐냑켓따상가의 덕복밭, 공양의 공덕이 크게 자라는 밭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a세상의 위없는 복밭
25kalyāṇamitta깔랴나밋따수행좋은 벗, 선우(善友)Sakalamevidaṃ … brahmacariyaṃ이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이다 (SN 45.2)
26saraṇa사라나귀의의지처,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이것이야말로 안온한 의지처
27aveccappasāda아웻짭빠사다믿음흔들림 없는 믿음, 흐름에 든 이의 삼보에 대한 믿음aveccappasāda사성제를 꿰뚫어 본 성자의 무너지지 않는 믿음
28upāsaka · upāsikā우빠사까 · 우빠시까사람남성 재가 신자와 여성 재가 신자ettāvatā kho, mahānāma, upāsako hoti그것으로 재가 신자가 된다 (AN 8.25)
29thera테라전통장로, 확립되어 흔들림 없는 이thero iti pavuccati참으로 장로라 부른다 (Dhp 261)
30saṅgīti상기띠전통결집, ‘함께 노래함’, 합송saṅgīti라자가하의 첫 번째 결집
31aṭṭhakathā앗타까타경전주석서, ‘뜻의 설명’aṭṭhakathā붓다고사가 빠알리어로 정리한 주석
32mahāpadesa마하빠데사기준네 가지 큰 기준, 경에 대조하고 율에 비추어 보는 원칙sutte ot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경에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전거 약어

경전과 주석서의 전거는 약어로 밝힌다. 예컨대 ‘SN 56.11’은 『상윳따 니까야』 제56 상윳따의 열한 번째 경을, ‘Dhp 183’은 『담마빠다』의 183번째 게송을, ‘Vism VII’은 『청정도론』 제7장을 가리킨다.

표 1-7전거 약어
약어원서명우리말 이름
VinVinayapiṭaka율장
DNDīghanikāya디가 니까야 (길게 설하신 경 모음)
MNMajjhimanikāya맛지마 니까야 (중간 길이로 설하신 경 모음)
SNSaṃyuttanikāya상윳따 니까야 (주제별로 묶은 경 모음)
ANAṅguttaranikāya앙굿따라 니까야 (숫자별로 묶은 경 모음)
KhpKhuddakapāṭha쿳다까빠타 (짧은 독송문 모음)
DhpDhammapada담마빠다 (법구경)
SnSuttanipāta숫따니빠따 (경집)
VismVisuddhimagga청정도론
SpSamantapāsādikā사만따빠사디까 (율장 주석서)

이해도 점검

이 편의 핵심을 다섯 문제로 확인해 보자. 보기를 누르면 곧바로 채점되고, 그 아래의 해설을 펼쳐 볼 수 있다. 마지막 문제는 두 경을 함께 읽어야 풀 수 있는 심화 문제다. 푼 기록은 이 기기에 남으므로 나중에 돌아와도 이어서 볼 수 있다.

0 / 5 정답
아직 푼 문제가 없다
첫째 문제

「도나 경」(AN 4.36)에서 도나 브라만이 “당신은 신입니까, 간답바입니까, 약카입니까, 인간입니까?” 하고 차례로 묻자 붓다는 어떻게 답했는가?

해설 펼치기

붓다는 신도 간답바도 약카도 인간도 아니라고 답한다. 그런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할 번뇌를 뿌리째 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에서 나고 자랐지만 물 위로 솟아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세상을 넘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머문다고 말한다. 테라와다에서 붓다는 창조주나 구원자인 신이 아니며, 그렇다고 ‘조금 지혜로운 옛 철학자’도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그 길을 보여 준 스승이다. 침묵으로 답한 것은 세상이 영원한가 따위의 물음에 대해서였으며(MN 63), 이 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둘째 문제

담마의 여섯 가지 덕 가운데 akāliko에 대한 『청정도론』의 주된 풀이로 옳은 것은?

해설 펼치기

akāliko는 흔히 ‘시간을 초월한’으로 옮겨져 가처럼 설명되기도 하지만, 주석서의 주된 풀이는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간의 선업은 과보를 맺기까지 다음 생이나 그 뒤까지 걸릴 수 있지만, 출세간의 도는 성취되는 바로 그 순간 과로 이어진다. 라가 틀린 까닭도 여기 있다. 『청정도론』은 여섯 덕 가운데 첫째 ‘잘 설해진’에만 교학의 법이 포함되고, 나머지 다섯은 네 도와 네 과와 열반이라는 출세간의 법에만 해당한다고 본다. 곧 경전을 읽기만 하면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실천하여 도와 과를 성취한 이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셋째 문제

주석서에 따를 때, 삼귀의에서 귀의의 대상이 되는 ‘상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해설 펼치기

상가에는 출가자들의 공동체라는 뜻과 성자들의 공동체라는 뜻이 있다. 주석서에 따르면 귀의의 대상은 ‘세존의 제자 상가’, 곧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도와 과에 이른 네 쌍 여덟 부류의 성자들이다. 삭발하고 가사를 입었다고 곧 귀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가는 틀리다. 사부대중은 붓다의 네 무리 제자를 가리키지만, 엄밀한 의미의 ‘상가’라는 말은 재가 신자의 모임에는 쓰지 않으므로 나도 틀리다. 다만 출가자의 상가는 가르침과 율을 이천오백 년 넘게 보존해 온 주체이자 성자들의 상가를 대표하는 공동체이기에, 테라와다 사회에서 공양과 법보시의 관계가 그 위에 서 있다.

넷째 문제

제1결집에서 마하깟사빠 존자가 제안하고 상가가 승인하여 테라와다의 원칙이 된 것이 아닌 것은?

해설 펼치기

아난다 존자는 붓다께서 “상가가 원한다면 사소한 학습계율들은 폐지해도 좋다”(DN 16)고 하셨다고 전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소한 계율인지를 여쭈어 두지 않았기에 장로들의 의견이 갈렸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스승께서 반열반하시자마자 계율을 버리면 세상의 비난을 받으리라 하여 가·나·다의 세 원칙을 제안했고 상가가 이를 승인했다. 그래서 테라와다는 법이든 율이든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뜻은 아니어서, 조항은 그대로 두되 이미 지어진 밥을 데우는 일처럼 달라진 환경에서의 적용은 테라와다 불교권 전체가 토론하여 통일되게 정해 왔다.

다섯째 문제 (심화)

「께사뭇띠 경」(AN 3.65)과 「뱀의 비유 경」(MN 22)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것은?

해설 펼치기

「께사뭇띠 경」이 내려놓으라고 한 열 가지 근거에는 경전과 전통뿐 아니라 추론, 논리적 추리, 그럴듯한 이유, 자신이 숙고해 온 견해와 맞는다는 것까지 들어 있으므로 가는 틀리다. 또 스스로 안다는 것에는 지혜로운 이들의 판단에 비추어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는 일이 포함된다. 뗏목의 비유에서 주석서는 버려야 할 ‘법들’을 사마타와 위빳사나 같은 훌륭한 경지에 대한 집착으로 풀이하며, 뗏목은 강 한가운데서 버리는 것이 아니므로 나도 틀리다. 경전은 믿음을 오근의 첫째로 꼽고 “믿음으로 거센 물을 건넌다”(Sn 1.10)고 노래하므로 라도 틀리다. 불교가 요구하는 것은 맹신이 아니라, 스승마저 검증하는(MN 47) 과정을 거쳐 체험으로 완성되는 믿음이다.